분류: 도시계획·사회
근린주구 이론
목차
개요
근린주구 이론은 초등학교 하나가 감당하는 범위를 주거지 계획의 기본 단위로 삼자는 도시계획 이론이다.
어떤 문제에서 나왔나
- 1920년대 미국 대도시에서 자동차가 주거지 안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문제가 출발점. 격자형 가로로 잘게 나뉜 블록에는 통과교통이 그대로 들어왔고, 아이가 학교에 가려면 차가 다니는 길을 몇 번씩 건너야 했다.
- 미국의 사회학자 클래런스 페리(Clarence A. Perry)가 1929년 『뉴욕 지역계획』 제7권 「근린과 커뮤니티 계획」에 실은 글에서 이 단위를 정리했다.1 뉴욕과 그 주변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다룬 대규모 계획 보고서의 한 편이다.
- 페리가 잡은 기준점은 초등학교다. 학교는 아이가 매일 혼자 걸어가는 유일한 시설이고, 학교 하나가 받을 수 있는 학생 수를 거꾸로 계산하면 그 주거지의 인구와 넓이가 나온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는 물리적 조건에서 단지 규모를 끌어낸 셈이다.
- 사회학자의 이론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페리는 도로와 획지를 나누는 기술이 아니라, 이웃끼리 얼굴을 아는 공동체를 어떻게 물리적으로 담을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학교와 집회 시설을 한가운데 모은 것도 그래서다.
여섯 가지 원칙
| 원칙 | 내용 |
|---|---|
| 규모 | 초등학교 하나를 유지할 만한 인구. 5,000~9,000명, 약 160에이커(약 65 ha)2 |
| 경계 | 간선도로를 주구의 네 변에 두어 통과교통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함 |
| 오픈스페이스 | 공원·놀이터를 전체 면적의 10% 이상, 주구 안에 나누어 배치2 |
| 공공시설 | 초등학교와 집회 시설을 주구 중심에 모음 |
| 상업시설 | 주구 둘레 전체를 따라 배치, 모서리 교차점에 더 몰림. 이웃 주구와 나누어 씀 |
| 내부 가로 | 폭과 위계를 달리하고 굽히거나 막아 통과가 어렵게 만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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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으로는 약 400 m(1/4마일), 곧 걸어서 5분 남짓 되는 거리를 잡는다. 한 변 약 800 m의 정사각형이라고 보면 대략 맞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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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가지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쇄다. 학교 하나 → 학생 수 → 인구 → 면적 → 걸어서 닿는 반경 → 그 반경을 지키기 위한 간선도로 위치 순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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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시설을 안이 아니라 둘레에 두른 이유는 두 가지다. 주거지 안에 상업 통행을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것이 하나이고, 이웃한 네 주구가 하나의 상가를 함께 쓰게 해 장사가 될 만한 규모를 만드는 것이 다른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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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 계획에서 늘 따라붙는 것이 인구밀도다. 같은 400 m 반경이라도 단독주택지와 고층 아파트단지는 담기는 인구가 열 배 넘게 차이 난다. 페리가 전제한 것은 에이커당 10호 안팎의 저밀 주거지였다.2
래드번 — 원칙을 땅에 옮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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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의 래드번(Radburn)은 클래런스 스타인과 헨리 라이트가 계획해 1929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주거지다.3 페리의 글과 거의 같은 시기에 지어졌고, 근린주구의 개념을 실제 도면으로 옮긴 첫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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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정립된 계획 기법은 지금도 그대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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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치를 흔히 래드번 방식이라고 부른다. 국내 아파트 단지에서 「단지 안 차 없는 길」·「보행자 전용 데크」로 부르는 것의 원형이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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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의 도구가 된다. 레지널드 아이작스는 1948년에 근린주구가 인종과 계층을 갈라 놓는 장치로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4 간선도로로 두른 경계는 통과교통만 막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가른다. 경계 안이 균질할수록 밖과의 차이는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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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구 안에서 생활이 끝나지 않는다. 직장·병원·고등학교·전문 상가는 애초에 주구 규모로 담기지 않는다. 자족적인 단위를 전제한 것 자체가 현실과 어긋난다는 지적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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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제이콥스의 반론(1961) — 도시의 안전과 활력은 사람이 오가는 데서 나오는데, 근린주구는 오히려 사람의 흐름을 끊는다는 것이다.5 제이콥스가 든 조건은 근린주구와 정반대에 가깝다.
- 용도를 섞을 것(주거만 있는 곳은 낮과 밤 중 한때가 비어 버린다)
- 블록을 짧게 할 것(슈퍼블록과 반대다)
- 오래된 건물과 새 건물이 섞여 있을 것
- 충분한 밀도가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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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스는 단일 용도의 큰 덩어리가 만드는 가장자리를 **경계 공백(border vacuum)**이라고 불렀다. 사람이 건너다니지 않는 가장자리는 양쪽 모두를 죽인다는 지적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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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에서 이 비판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자리는 단지 담장과 상가다. 주구 경계를 따라 담을 두르면 안쪽은 조용해지지만, 담을 낀 바깥 보도는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이 된다. 그 길에 면한 근린생활시설이 비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에서 어떻게 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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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대규모 택지개발사업과 아파트 단지계획을 통해 들어왔다. 초등학교를 단지 한가운데 두고, 간선도로로 둘러싸인 한 덩어리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잡는 방식이 표준처럼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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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부터 1996년까지 지어진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가 이 방식이 가장 넓게 적용된 사례다. 다섯 곳을 합쳐 면적 약 50.1 km², 계획인구 약 116.8만 명, 주택 약 29.2만 호 규모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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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원형 그대로 적용된 것은 아니다. 국내 적용에서 달라진 대목이 몇 가지 있다.
- 밀도 — 페리가 전제한 저밀 단독주택지가 아니라 중·고층 아파트다. 같은 400 m 반경 안에 훨씬 많은 인구가 들어간다. 그만큼 학교·공원 하나가 감당해야 하는 인구도 커진다.
- 경계 — 간선도로에 더해 단지 담장이 하나 더 생긴다. 페리의 경계는 도로였지 담이 아니었다.
- 상업 — 모서리 교차점의 근린상가에 더해, 단지 안쪽에도 상가가 들어간다.
- 위계 — 국내 계획에서는 주구를 다시 몇 단계로 나누어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각 단계의 인구·면적 수치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어, 법령이나 국가 기준으로 확정된 값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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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제도에서 이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것은 생활권이다. 도시·군기본계획에 「생활권의 설정과 생활권역별 개발·정비 및 보전 등에 관한 사항」을 담도록 되어 있고(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9조 (새 창에서 열림) 제1항 제2호의2), 필요하면 생활권계획을 따로 세울 수 있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9의2조 (새 창에서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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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권계획을 세울 때는 기본계획의 공간구조를 생활권별로 구체화하고, 생활권마다 기반시설 설치·관리 계획을 함께 세우도록 정하고 있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6의2조 (새 창에서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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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법이 근린주구의 규모를 정해 놓은 것은 아니다. 생활권을 어떻게 나눌지는 지자체가 정하고, 400 m니 5,000명이니 하는 수치는 계획 실무의 관행이지 법정 기준은 아니다.
지금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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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자체는 낡았지만 「걸어서 몇 분」으로 생활권을 재는 방식은 의미가 있다. 뉴어바니즘은 페리의 1/4마일을 5분 보행권이라는 계측 가능한 기준으로 다시 정리했고, 대신 주거 단일용도와 바깥 상업 배치는 복합용도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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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중심 개발(TOD)도 뼈대는 같다. 중심에 놓이는 것이 초등학교에서 역으로 바뀌었을 뿐, 「중심 시설 + 걸어서 닿는 반경 + 그 반경 안의 밀도」라는 구성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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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근린주구 이론에서 활용할 점과 아닌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 남은 것 — 보행 거리로 단위를 정하는 방식, 중심에 공공시설을 모으는 배치, 통과교통을 주거지 밖으로 돌리는 가로 계획
- 버려진 것 — 주거만으로 채운 단일용도, 경계를 닫아 자족을 노리는 태도, 인구 규모를 고정값으로 보는 시각
계획에서 확인하는 것
- 학교 배치와 통학로 — 주구 중심에 학교를 두었다 해도, 통학로가 간선도로를 건너면 이론의 전제가 깨진다. 횡단 지점 수와 신호 대기 시간을 함께 본다.
- 경계의 성격 — 간선도로로 둘렀는지, 담으로 둘렀는지. 담으로 두른 경우 바깥 보도가 죽지 않도록 면한 시설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함께 검토한다.
- 상가의 위치와 규모 — 둘레를 따라 배치한 상가가 이웃 주구와 실제로 공유되는 자리인지. 한쪽에서만 접근되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가와 주거의 비율을 잘 고려해야 한다. 베드타운인지, 업무지구인지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 공원까지의 실제 보행 거리 — 직선거리가 아니라 걸어서 가는 거리로 잰다. 단지 담장과 옹벽을 돌아가면 직선거리의 두 배가 되는 일이 흔하다.
- 밀도와 시설 용량 — 계획인구가 페리의 전제보다 몇 배 높다면, 학교·공원·주차 용량을 그 배수에 맞춰 다시 잡아야 한다.
출처
각주
-
Clarence A. Perry, 「The Neighborhood Unit」, 『Regional Survey of New York and Its Environs』 제7권 『Neighborhood and Community Planning』 (1929) ↩
-
Ansley T. Erickson · Andrew R. Highsmith, 「The Neighborhood Unit: Schools, Segregation, and the Shaping of the Modern Metropolitan Landscape」, 『Teachers College Record』 (2018) ↩ ↩2 ↩3 ↩4
-
미국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 「Radburn」 국가사적지 등록 자료, https://npgallery.nps.gov/NRHP/AssetDetail/6fb49eeb-5740-4796-8c12-6995853bcdf2 (새 창에서 열림) ↩
-
Reginald R. Isaacs, 「The Neighborhood Theory: An Analysis of Its Adequacy」, 『Journal of the American Institute of Planners』 제14권 제2호 (1948) ↩ ↩2
-
Jane Jacobs,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Random House (1961) ↩ ↩2
-
국토교통부, 「제1기 신도시 건설안내」 정책자료 ↩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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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린주구의 배치 개념도: 정사각형 주구의 네 변을 간선도로가 두르고, 그 안쪽 둘레 전체를 상업시설이 감싸며 특히 모서리 교차점에 더 몰리고, 둘레와 중심 사이에는 주거 블록과 공원을 두며, 중심에는 초등학교와 집회시설을 두고, 내부 가로는 막다른 길로 굽혀 통과교통이 지나지 못하게 한 배치 | 건축사.조석현 | AI로 생성 | 직접 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