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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건축물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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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경복궁은 1395년에 조선의 정궁(법궁)으로 지어져 서울 도성 북쪽에 남북 중심축을 따라 배치된 목조 궁궐이다.

Gyeongbokgung Palace (새 창에서 열림)
Gyeongbokgung Palace촬영: 이상곤 (새 창에서 열림) · 출처 사이트 조건에 따름 (새 창에서 열림) · 위키미디어 공용 (새 창에서 열림)

자리와 배치

경복궁 배치 개념도. 남쪽 광화문에서 북쪽 신무문까지 하나의 남북 중심축 위에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향원정·건청궁이 차례로 놓이고, 축의 서쪽에 경회루와 수정전, 동쪽에 자경전과 동궁이 배치된다. 동서 궁성문은 건춘문(동)과 영추문(서)이다.
경복궁 배치 개념도. 남쪽 광화문에서 북쪽 신무문까지 하나의 남북 중심축 위에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향원정·건청궁이 차례로 놓이고, 축의 서쪽에 경회루와 수정전, 동쪽에 자경전과 동궁이 배치된다. 동서 궁성문은 건춘문(동)과 영추문(서)이다.제작: 건축사.조석현 · AI로 생성

도해 출처 — 남북 축 위의 전각 차례와 전조후침 배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항목,1 동쪽·서쪽 궁성문의 자리는 같은 사전의 「경복궁 건춘문」2·「경복궁 영추문」3 항목을 읽고 우리 그림으로 새로 그렸다. 남의 도면을 옮긴 것이 아니며, 칸 수와 실제 거리를 재어 그린 축척 도면도 아니다.

  • 백악산(북악산)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본다. 산을 배경에 두면 건물을 낮게 지어도 궁궐이 크게 보인다.
  • 하나의 남북 축에 정문·중문·정전·편전·침전을 차례로 놓는다. 축 위의 문을 지날수록 마당이 좁아지고, 담과 행각(건물을 둘러싼 긴 복도형 건물)이 마당을 하나씩 끊는다.
  • 앞쪽(남)에 정사를 보는 외전을 두고 뒤쪽(북)에 사는 침전을 두는 전조후침(前朝後寢) 격식을 따랐다.1
  • 창건 당시 규모는 390여 칸으로, 근정전·강녕전·보평청 같은 기본 전각만 갖추었다.1
  • 궁성문은 남쪽 광화문, 동쪽 건춘문,2 서쪽 영추문,3 북쪽 신무문의 네 곳이다.
  • 궁 이름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에서 「경복」 두 자를 따왔다.1
축을 먼저 잡는 이유

축은 공사의 기준선 노릇을 한다. 문과 전각의 중심을 한 줄에 맞추면 기단·계단·어도(임금이 다니는 길)의 좌우 치수가 그 선에서 정해진다. 복원 공사에서 옛 기단과 초석 자리를 발굴로 먼저 찾는 것도 같은 까닭이다. 축과 칸 나눔을 되찾지 못하면 그 위에 올리는 목구조가 전부 어긋난다.

주요 전각

근정전 — 정전

  • 정면 5칸, 측면 5칸의 중층(2층) 팔작지붕 건물이다.4 겉은 2층이지만 안은 위아래가 트인 한 공간이다.
  • 공포(기둥 위에서 지붕 무게를 받아 퍼뜨리는 짜임)는 다포계이고, 앞뒤 툇간을 둔 11량 구조다.4
  • 바깥두리기둥과 안두리기둥에 귀고주를 세워 중층의 하중을 받는다.4
  • 기단은 이중 월대다. 위아래 단 둘레에 돌난간을 돌리고 난간 기둥머리에 십이지상을 새겼다.4
  • 가운데 계단의 답도에 봉황을 새겼고, 근정문까지 이어지는 어도 좌우에 품계석을 세웠다.4
  • 지금 건물은 1867년 중건분이다. 2000년 1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46개월 동안 1층 서까래와 2층 부분을 해체해 다시 짰다.4

사정전 — 편전

  •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5 공포다포계 내외 2출목이다.5
  • 임금이 평상시 머물며 정사를 보던 자리다.5 동쪽 만춘전, 서쪽 천추전과 함께 편전 일곽을 이룬다.5

강녕전·교태전 — 침전

  • 강녕전은 왕의 침전이다. 정면 11칸, 측면 5칸이고 대청마루·온돌방·툇마루·협실·누마루로 짜인 좌우 대칭 평면이다.6
  • 강녕전은 1917년 창덕궁 내전을 다시 짓는다는 명목으로 헐렸다. 1990년 침전 터 발굴조사를 거쳐 1994년 12월 12일 복원을 마쳤다.6
  •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7 1920년에 헐려 창덕궁 대조전의 부재로 쓰였다.7
  • 교태전 뒤뜰은 아미산이라 부르는 화계(계단식 화단)로 꾸미고, 꽃무늬를 새긴 굴뚝을 그 위에 세웠다.7

자경전 — 대비 침전

  • 정면 10칸, 측면 4칸이다. 동쪽에 청연루(정면 1칸·측면 2칸)와 협경당(정면 6칸·측면 2칸)이 이어 붙는다.8
  • 지붕은 팔작지붕에 부연을 단 겹처마이고, 공포익공계 이익공이다.8
  •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에 큰 온돌방을 들였다.8 뒷담의 십장생 굴뚝은 1985년에 따로 보물로 지정되었다.8
  • 담에 모란·석류·매화 무늬를 넣은 꽃담을 둘렀다.8 1867년에 신정왕후를 위해 지었고, 불에 탄 뒤 1888년에 다시 지었다.8

경회루 — 누각

  • 네모난 연못 안에 세운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 누각이다.9
  • 기둥은 모두 48개로 바깥 24개, 안 24개다.9 공포익공계 이익공으로, 다포계인 근정전보다 짜임이 단출하다.9
  • 기단장대석으로 쌓고 둘레에 팔각 돌난간을 돌렸다.9 용마루 끝에 취두를 올렸고, 뭍과는 돌다리 세 개로 잇는다.9

향원정

  • 연못 가운데 섬에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중층 육모지붕 정자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위아래 층 크기가 같은 정육각형 평면이다.10
  • 1885년 무렵 세운 것으로 본다.10

궁성문

광화문 — 정문

  • 석축 기단에 홍예문(무지개 모양 아치문) 세 개를 뚫고 그 위에 문루를 올렸다.11
  •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 형식 중층집이고 지붕은 우진각지붕이다.11
  • 1865년에 다시 지었다.11 1927년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11
  • 1968년에 석축을 손보고 문루를 철근콘크리트로 세웠다가, 2006년에 헐고 목조로 다시 지어 2010년 8월에 마쳤다.11

건춘문·영추문

  • 건춘문은 동쪽 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 단층 건물이고, 익공겹처마에 지붕마루에는 용두·취두·잡상을 올렸다.2 1865년 중건 때 세웠고, 문반만 드나들던 문이다.2
  • 영추문은 서쪽 문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목조 문루로, 석축에 홍예문을 내고 그 위에 문루를 세웠다.3 2익공 겹처마 우진각지붕이다.3
  • 영추문은 1426년에 지금 이름을 얻었고,3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고종 때 다시 지었다.3 1926년 무렵 전차 노선을 놓으면서 헐렸고, 1975년에 원래 자리에서 조금 옮겨 콘크리트로 복원했다.3

목구조와 마감

궁궐 건축도 살림집과 같은 목구조를 쓴다. 다만 부재를 굵게 잡고, 격식에 따라 짜임과 마감의 등급을 달리한다.

부위 궁궐 전각에서 그렇게 하는 까닭
기단 장대석 바른층쌓기, 정전은 이중 월대 목재를 지면 습기에서 띄운다. 단의 높이로 건물의 격을 나타낸다
초석 화강석 다듬돌 기둥 밑둥이 물을 먹지 않게 하고 하중을 지반으로 넘긴다
공포 정전·정문은 다포, 누각·침전은 익공 처마를 멀리 내밀수록 짜임이 복잡해진다. 격식이 높은 건물일수록 출목이 늘어난다
지붕 [팔작지붕], [우진각지붕], 육모(정자) 지붕 모양으로 건물의 성격을 구분했다
벽체 기둥 사이에 인방을 걸고 심벽에 회 마름질 목구조가 힘을 받고 벽은 채움재 노릇만 한다
채색 단청 목재를 자외선과 벌레에서 막고, 색과 무늬로 등급을 표시한다
  • 지붕마루 끝에는 취두·용두·잡상을 올린다.2 장식이면서 기와 마루의 마구리를 눌러 마감하는 부재다.
  • 굴뚝은 전돌(구운 벽돌)로 쌓아 조형물처럼 다루었다. 아미산 굴뚝은 화강석 지대석 위에 육각으로 쌓았다.12
  • 아미산 굴뚝은 아래에 벽사상을 새긴 벽돌, 가운데에 십장생·사군자·만자문 회벽, 위에 봉황을 새긴 벽돌과 당초문 회벽을 층층이 둘렀다.12 맨 위는 소로·창방·첨차 모양 벽돌로 마감하고 기와지붕과 연가(연기가 나가는 꼭대기 장식)를 얹었다.12 같은 형식이 넷 남아 있다.12

짓고 다시 지은 내력

시기
1394~1395년 신도궁궐조성도감을 두어 짓기 시작해 이듬해 완성. 390여 칸1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 이후 약 270년간 폐허1
1865~1867년 중건. 7,225칸 반 규모, 후원 전각 256칸1
1910년대 이후 4,000여 칸을 헐어 민간에 팔고, 1917년 창덕궁 화재 뒤 전각을 뜯어 자재로 씀1
1917년 강녕전 철거6
1920년 교태전 철거7
1926년 흥례문 권역에 조선총독부 청사 준공13
1963년 사적으로 지정1
1994년 강녕전 복원6
1995~1996년 총독부 청사 철거(1995년 8월 15일 착수, 1996년 11월 13일 완료)13
1990~2010년 1차 복원 정비14
2011~2045년 2차 복원 정비 사업 진행 중14
  • 1592년에 불탄 뒤 270년 동안 다시 짓지 못했다.1 그 사이 창덕궁이 정궁 노릇을 했다.
  • 중건 규모 7,225칸 반은 창건 때 390여 칸의 18배가 넘는다.1 짧은 기간에 이만한 목재와 석재를 모으는 일이 뒤에 재정 부담으로 남았다.

복원 사업

  • 1990년부터 2010년까지 1차 복원, 2011년부터 2045년까지 2차 복원 정비가 이어진다.14 복원의 기준 시점은 고종 때 궁이 최종적으로 갖추어진 1888년이다.14
  • 최종 목표는 고종 당시 500여 동 가운데 205동으로, 원래 규모의 약 41%다.14
  • 광화문 앞 월대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발굴조사를 했다. 전체 규모와 축조 방법, 네 단계에 걸친 변화 과정을 확인했다.15
  • 월대 아래에서는 조선 전기의 차일고리석과 석렬이 나왔다.15
복원 공사가 일반 수리와 다른 이유

남아 있는 부재가 거의 없는 전각은 발굴로 확인한 기단·초석 자리와 「북궐도형」 같은 도면 자료, 옛 사진에 기대어 새로 짓는다. 원래 부재를 살려 쓰는 수리와는 일이 다르다. 자재와 연장을 옛 방식으로 쓸지, 오늘의 구조 기준을 어디까지 반영할지는 권역마다 달리 정한다.

국가유산 지정 현황

궁역 전체가 사적이고, 그 안의 개별 건물이 국보·보물로 따로 지정되어 있다. 지정과 관리의 근거는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새 창에서 열림) 이다.

대상 종목 지정
경복궁(궁역) 사적 1963년1
근정전 국보 1985년 1월 8일4
경회루 국보 1985년9
사정전 보물 2012년 3월 2일5
자경전 보물 1985년 1월 8일8
향원정 보물 2012년 3월 2일10
자경전 십장생 굴뚝 보물 1985년8
아미산 굴뚝 보물 1985년12

같이 보기

출처

각주

  1.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4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6 7 8 9 10 11 12

  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건춘문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7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3.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영추문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6898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6 7

  4.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경복궁 근정전」,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111102230000 (새 창에서 열림)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근정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2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6 7

  5.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사정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5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6.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강녕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5 (새 창에서 열림) 2 3 4

  7.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교태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0 (새 창에서 열림) 2 3 4

  8.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자경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8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6 7 8

  9.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경회루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8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6

  10.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경복궁 향원정」,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Uid=13898859672787200591 (새 창에서 열림) 2 3

  11.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광화문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9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1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아미산 굴뚝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7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13.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joseonChong.do (새 창에서 열림) 2

  14. 국가유산청 경복궁관리소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 https://www.royalpalace.go.kr/content/data/data_03_13.asp (새 창에서 열림) 2 3 4 5

  15.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경복궁 광화문 월대 발굴조사 보고서」 (2025) 2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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