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건축물
경복궁
목차
개요
경복궁은 1395년에 조선의 정궁(법궁)으로 지어져 서울 도성 북쪽에 남북 중심축을 따라 배치된 목조 궁궐이다.
자리와 배치
도해 출처 — 남북 축 위의 전각 차례와 전조후침 배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항목,1 동쪽·서쪽 궁성문의 자리는 같은 사전의 「경복궁 건춘문」2·「경복궁 영추문」3 항목을 읽고 우리 그림으로 새로 그렸다. 남의 도면을 옮긴 것이 아니며, 칸 수와 실제 거리를 재어 그린 축척 도면도 아니다.
- 백악산(북악산)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본다. 산을 배경에 두면 건물을 낮게 지어도 궁궐이 크게 보인다.
- 하나의 남북 축에 정문·중문·정전·편전·침전을 차례로 놓는다. 축 위의 문을 지날수록 마당이 좁아지고, 담과 행각(건물을 둘러싼 긴 복도형 건물)이 마당을 하나씩 끊는다.
- 앞쪽(남)에 정사를 보는 외전을 두고 뒤쪽(북)에 사는 침전을 두는 전조후침(前朝後寢) 격식을 따랐다.1
- 창건 당시 규모는 390여 칸으로, 근정전·강녕전·보평청 같은 기본 전각만 갖추었다.1
- 궁성문은 남쪽 광화문, 동쪽 건춘문,2 서쪽 영추문,3 북쪽 신무문의 네 곳이다.
- 궁 이름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에서 「경복」 두 자를 따왔다.1
축은 공사의 기준선 노릇을 한다. 문과 전각의 중심을 한 줄에 맞추면 기단·계단·어도(임금이 다니는 길)의 좌우 치수가 그 선에서 정해진다. 복원 공사에서 옛 기단과 초석 자리를 발굴로 먼저 찾는 것도 같은 까닭이다. 축과 칸 나눔을 되찾지 못하면 그 위에 올리는 목구조가 전부 어긋난다.
주요 전각
근정전 — 정전
- 정면 5칸, 측면 5칸의 중층(2층) 팔작지붕 건물이다.4 겉은 2층이지만 안은 위아래가 트인 한 공간이다.
- 공포(기둥 위에서 지붕 무게를 받아 퍼뜨리는 짜임)는 다포계이고, 앞뒤 툇간을 둔 11량 구조다.4
- 바깥두리기둥과 안두리기둥에 귀고주를 세워 중층의 하중을 받는다.4
- 기단은 이중 월대다. 위아래 단 둘레에 돌난간을 돌리고 난간 기둥머리에 십이지상을 새겼다.4
- 가운데 계단의 답도에 봉황을 새겼고, 근정문까지 이어지는 어도 좌우에 품계석을 세웠다.4
- 지금 건물은 1867년 중건분이다. 2000년 1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46개월 동안 1층 서까래와 2층 부분을 해체해 다시 짰다.4
사정전 — 편전
-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5 공포는 다포계 내외 2출목이다.5
- 임금이 평상시 머물며 정사를 보던 자리다.5 동쪽 만춘전, 서쪽 천추전과 함께 편전 일곽을 이룬다.5
강녕전·교태전 — 침전
- 강녕전은 왕의 침전이다. 정면 11칸, 측면 5칸이고 대청마루·온돌방·툇마루·협실·누마루로 짜인 좌우 대칭 평면이다.6
- 강녕전은 1917년 창덕궁 내전을 다시 짓는다는 명목으로 헐렸다. 1990년 침전 터 발굴조사를 거쳐 1994년 12월 12일 복원을 마쳤다.6
-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7 1920년에 헐려 창덕궁 대조전의 부재로 쓰였다.7
- 교태전 뒤뜰은 아미산이라 부르는 화계(계단식 화단)로 꾸미고, 꽃무늬를 새긴 굴뚝을 그 위에 세웠다.7
자경전 — 대비 침전
- 정면 10칸, 측면 4칸이다. 동쪽에 청연루(정면 1칸·측면 2칸)와 협경당(정면 6칸·측면 2칸)이 이어 붙는다.8
- 지붕은 팔작지붕에 부연을 단 겹처마이고, 공포는 익공계 이익공이다.8
-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에 큰 온돌방을 들였다.8 뒷담의 십장생 굴뚝은 1985년에 따로 보물로 지정되었다.8
- 담에 모란·석류·매화 무늬를 넣은 꽃담을 둘렀다.8 1867년에 신정왕후를 위해 지었고, 불에 탄 뒤 1888년에 다시 지었다.8
경회루 — 누각
- 네모난 연못 안에 세운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 누각이다.9
- 기둥은 모두 48개로 바깥 24개, 안 24개다.9 공포는 익공계 이익공으로, 다포계인 근정전보다 짜임이 단출하다.9
- 기단은 장대석으로 쌓고 둘레에 팔각 돌난간을 돌렸다.9 용마루 끝에 취두를 올렸고, 뭍과는 돌다리 세 개로 잇는다.9
향원정
목구조와 마감
궁궐 건축도 살림집과 같은 목구조를 쓴다. 다만 부재를 굵게 잡고, 격식에 따라 짜임과 마감의 등급을 달리한다.
| 부위 | 궁궐 전각에서 | 그렇게 하는 까닭 |
|---|---|---|
| 기단 | 장대석 바른층쌓기, 정전은 이중 월대 | 목재를 지면 습기에서 띄운다. 단의 높이로 건물의 격을 나타낸다 |
| 초석 | 화강석 다듬돌 | 기둥 밑둥이 물을 먹지 않게 하고 하중을 지반으로 넘긴다 |
| 공포 | 정전·정문은 다포, 누각·침전은 익공 | 처마를 멀리 내밀수록 짜임이 복잡해진다. 격식이 높은 건물일수록 출목이 늘어난다 |
| 지붕 | [팔작지붕], [우진각지붕], 육모(정자) | 지붕 모양으로 건물의 성격을 구분했다 |
| 벽체 | 기둥 사이에 인방을 걸고 심벽에 회 마름질 | 목구조가 힘을 받고 벽은 채움재 노릇만 한다 |
| 채색 | 단청 | 목재를 자외선과 벌레에서 막고, 색과 무늬로 등급을 표시한다 |
짓고 다시 지은 내력
| 시기 | 일 |
|---|---|
| 1394~1395년 | 신도궁궐조성도감을 두어 짓기 시작해 이듬해 완성. 390여 칸1 |
| 1592년 | 임진왜란으로 전소. 이후 약 270년간 폐허1 |
| 1865~1867년 | 중건. 7,225칸 반 규모, 후원 전각 256칸1 |
| 1910년대 이후 | 4,000여 칸을 헐어 민간에 팔고, 1917년 창덕궁 화재 뒤 전각을 뜯어 자재로 씀1 |
| 1917년 | 강녕전 철거6 |
| 1920년 | 교태전 철거7 |
| 1926년 | 흥례문 권역에 조선총독부 청사 준공13 |
| 1963년 | 사적으로 지정1 |
| 1994년 | 강녕전 복원6 |
| 1995~1996년 | 총독부 청사 철거(1995년 8월 15일 착수, 1996년 11월 13일 완료)13 |
| 1990~2010년 | 1차 복원 정비14 |
| 2011~2045년 | 2차 복원 정비 사업 진행 중14 |
복원 사업
- 1990년부터 2010년까지 1차 복원, 2011년부터 2045년까지 2차 복원 정비가 이어진다.14 복원의 기준 시점은 고종 때 궁이 최종적으로 갖추어진 1888년이다.14
- 최종 목표는 고종 당시 500여 동 가운데 205동으로, 원래 규모의 약 41%다.14
- 광화문 앞 월대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발굴조사를 했다. 전체 규모와 축조 방법, 네 단계에 걸친 변화 과정을 확인했다.15
- 월대 아래에서는 조선 전기의 차일고리석과 석렬이 나왔다.15
남아 있는 부재가 거의 없는 전각은 발굴로 확인한 기단·초석 자리와 「북궐도형」 같은 도면 자료, 옛 사진에 기대어 새로 짓는다. 원래 부재를 살려 쓰는 수리와는 일이 다르다. 자재와 연장을 옛 방식으로 쓸지, 오늘의 구조 기준을 어디까지 반영할지는 권역마다 달리 정한다.
출처
각주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4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6 ↩7 ↩8 ↩9 ↩10 ↩11 ↩12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건춘문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7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영추문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6898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6 ↩7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경복궁 근정전」,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1111102230000 (새 창에서 열림)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근정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2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6 ↩7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사정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5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강녕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5 (새 창에서 열림) ↩ ↩2 ↩3 ↩4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교태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0 (새 창에서 열림) ↩ ↩2 ↩3 ↩4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자경전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8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6 ↩7 ↩8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경회루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8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6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경복궁 향원정」,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Uid=13898859672787200591 (새 창에서 열림) ↩ ↩2 ↩3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광화문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39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 아미산 굴뚝 항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447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joseonChong.do (새 창에서 열림) ↩ ↩2
-
국가유산청 경복궁관리소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 https://www.royalpalace.go.kr/content/data/data_03_13.asp (새 창에서 열림) ↩ ↩2 ↩3 ↩4 ↩5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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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yeongbokgung Palace | 이상곤 | 출처 사이트 조건에 따름 | 위키미디어 공용 |
| 경복궁 배치 개념도. 남쪽 광화문에서 북쪽 신무문까지 하나의 남북 중심축 위에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향원정·건청궁이 차례로 놓이고, 축의 서쪽에 경회루와 수정전, 동쪽에 자경전과 동궁이 배치된다. 동서 궁성문은 건춘문(동)과 영추문(서)이다. | 건축사.조석현 | AI로 생성 | 직접 제작 |